지난 20년 동안 IT 서비스 스타트업의 성공 방정식은 명확했습니다.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팀이 뛰어난 개발자들을 확보하고, 기술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입니다. 실리콘밸리와 한국 스타트업 씬 모두 마찬가지였죠. 이 과정에서 개발은 스타트업의 사업 전개 상 주요 병목이었고 개발자는 주요 병목 자원이었습니다. 좋은 제품 개발팀을 얼마나 빨리 채용하고 유지할 수 있느냐가 곧 성공과 실패를 나누는 경계였습니다. 당연히 개발자의 몸값은 치솟았고, 투자자들도 그런 팀에 아낌없이 돈을 부었습니다.
병목이 사라진 시대
하지만 대규모 언어 모델(LLM)과 함께하는 바이브 코딩(Vibe coding)1이 확산되면서, 2025년은 더 이상 코딩과 개발이 스타트업의 주요 병목이 아닌 원년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단순한 앱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일은 누구나 비교적 쉽게 할 수 있습니다. AI가 코드 작성을 돕고 수행하면서 제품 개발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뛰어난 개발자가 없으면 아이디어가 아무리 좋아도 시장 진입조차 어려웠지만, 이제는 좋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비개발자도 단기간 내에 MVP(최소기능제품)를 만들고 시장 검증까지 끝낼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스타트업과 VC 모두에게 유효할 질문이 생겼습니다.
“개발이 더 이상 병목이 아니라면, 이제 승부는 어디서 갈리는가?”
진짜 승부처는 ‘고객 확보와 유지’
개발의 장벽이 무너졌다는 것은, 시장에서의 경쟁이 훨씬 치열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구나 빠르게 제품을 출시할 수 있게 되자 기술 자체로는 더 이상 차별화를 만들기 어려워졌습니다. 아이디어가 나오면 유사 제품이 순식간에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기술적 우위의 유지 기간이 극단적으로 짧아졌습니다.
결국, 새로운 시대의 승부처는 ‘고객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확보하고, 유지하는가’로 옮겨갑니다. 마케팅과 브랜딩, 사용자 경험(UX, AX)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으며, 빠르게 제품을 개선하고 시장의 피드백을 신속히 반영할 수 있는 실행력이 무엇보다 중요해졌습니다. 이제 승부는 고객을 충성 팬으로 만드는 능력, 그들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깊이 있게 만들어 나가는 능력에서 갈리게 되었습니다.
원래 스타트업은 고객 확보와 유지가 본업인데 개발이 하도 병목으로 작용하다보니 개발을 빠르게 잘하는 것이 이를 가속시키는 인과관계가 성립하고 지속되었던 것이긴 합니다.
투자 기준도 바뀔까
그렇다면 투자자의 시선은 어떻게 변할까요? 지금까지 VC들은 기술적 진입장벽이 높거나 개발 역량이 뛰어난 팀을 선호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컨슈머/서비스 스타트업 한정 그 기술적 진입장벽이 급격히 낮아지면서 투자 전략도 변화에 대한 고민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이제 스타트업의 시장 진입과 성장 역량을 더 중점적으로 볼 겁니다. 기술 우위가 단기에 복제될 수 있는 환경에서는 제품이 얼마나 빠르게 시장에서 검증되고 성장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됩니다. 예를 들어,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시장에서 고객을 모으지 못하는 팀보다는 기술은 평균 수준이어도 뛰어난 마케팅 역량이나 강력한 커뮤니티를 가진 팀이 더 높은 관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동안 유망한 팀에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야 했던 이유는 몸값이 비싼 좋은 개발자들 채용과 좋은 개발팀 확보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야 제품 개발과 실험 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다른 곳에 돈이 들어갈 수 있다면 어디에 투자가 되어야 할까요.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기존 상식에 기반한 밸류에이션이 다시 검토되어야 할 타이밍이 온 것일 수도 있습니다.
개발자의 역할 확장
이러한 변화는 개발자들에게도 역할 변화를 시사합니다. 이제 단순히 뛰어난 코딩 역량만으로 생존하기는 어렵게 되었습니다. AI가 상당 부분의 코딩을 수행하고 자동화하면서 개발자는 비즈니스 도메인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고객 문제를 빠르고 적절히 또는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을 가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뛰어난 개발자들에게는 더 큰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을 더 관찰하고 고객의 목소리를 더 가까이에서 들으며 비즈니스 임팩트로 연결하기가 더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일했던 Lyft라는 스타트업은 매년 SF HQ에 있는 모든 제품개발팀을 1주일씩 Nashville에 있는 고객지원 제2본사에 출장보내 직접 콜센터에서 고객 민원 전화를 받도록 했습니다. 직접 고객의 불만을 들어봐야 고객을 위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요.
이렇게 접수된 불만 티켓들을 기존에는 1. 우선순위 정하기 → 2. 기획 → 3. 설계 → 4. 개발 → 5. 검수 → 6. 배포의 단계로 해결에 며칠 또는 몇 주씩 걸리는게 아니라, 이제 바로 1. 티켓 발행 → 2. AI 에이전트가 코드 작성 (자동 설계, 자동 구현, 자동 검수, 자동 staging 배포 까지 수행) → 3. 사람의 검수와 배포로 해결하는 시대가 이미 왔습니다.
이제 누가 잘하는 개발자일까요. 비즈니스 임팩트를 만들기 위해 AI가 코딩과 개발을 잘하도록 최고로 잘 돕고 필요한 정보와 맥락을 제공하는 사람입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병목은?
다시 스타트업의 본질로 돌아가봅시다. 스타트업은 어떤 조직이고 어떻게 일해야 할까요? 주요 병목이 변화한 지금, 진정으로 던져야 하는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앞당기고 싶은 미래는 무엇인가?
그 미래를 앞당기려면 무엇을 가속해야 하는가?
그 가속을 가로막는 병목은 무엇인가?
그 병목을 해결하기 위해 오늘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스타트업과 VC는 결국 원하는 미래를 앞당기기 위해 세상의 병목을 찾아 해결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업가들은 에너지를 쏟아붇고 투자자들은 돈을 쏟아부어 원하는 미래를 만나는 시간을 앞당기죠.
변화의 시기에는 위기와 함께 새로운 기회가 찾아옵니다. 컨슈머/서비스 스타트업이 코딩과 개발 이후 새롭게 맞닥뜨릴 병목이 무엇인지,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따라 생존과 번영이 결정될 것입니다.
현재 기회로 바라보고 있는 병목들이 있다면 공유해주세요. 감사합니다.
Vibe coding, sometimes spelled vibecoding, is an AI-powered programming practice where a programmer surrenders to the "vibes" and power of the AI, while ignoring the details of the generated code.
https://en.wikipedia.org/wiki/Vibe_coding
https://x.com/karpathy/status/1886192184808149383
https://www.youtube.com/watch?v=IACHfKmZMr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