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약 8년 전, 쿠팡 실리콘밸리 오피스에 있다가 서울 오피스로 출장을 오면 가끔 쿠팡 김범석 대표님과 저녁을 먹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그는 “규모의 경제”, “우린 커머스 회사가 아니라 테크 회사다”, “네이버를 넘어 최고의 검색 회사가 된다”,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지? 그게 우리의 목표다” 같은 이야기를 자주 했는데, 지금 와서 보면 그것들 모두 쿠팡의 뼈대가 된 말들이었습니다.
근데 이상하게 제 머릿속에 깊이 박힌 건 이런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좀 더 담담하게 했던 한마디였습니다. “경영이란게 뭐냐면, 잘하는 건 잘한다고 하고, 못하는 건 못한다고 하는 거예요.”
솔직히 그땐 ‘뭐야, 이게 무슨 대단한 통찰이야?’ 싶었습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다닌 분이니 경영을 정의하기 까지 고민이 깊었을텐데 이건 너무 단순해서 오히려 뭘 말하려는 건지 잘 안 와닿았거든요.
하지만 몇 년 지나고 나서, 제가 사람을 더 많이 관리하고 조직이 커지고 경영 마인드를 갖추면서 그 말이 점점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단순해 보이는 이 원칙이 사실은 엄청난 준비와 실행력을 필요로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오늘은 그 깨달음을 풀어보면서 이걸 실제로 해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했는지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그냥 되는게 아니다
김범석 대표님 말대로 “잘하는 건 잘한다고 하고, 못하는 건 못한다”고 하는 원칙은 단순해 보이지만, 작동하려면 몇가지 토대가 필요합니다.
첫째,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뭘 잘했다고 할 거고, 뭘 못했다고 할 건지 잣대가 분명하지 않으면 다 허공에 붕 뜹니다. 예를 들어, 우리 팀이 이번 분기에 매출 10억을 목표로 했다고 가정해봅시다. 10억 달성했으면 “잘했어”라고 박수 칠 수 있고, 8억에 그쳤으면 “이건 좀 아쉽네”라고 말할 수 있는 거죠. 근데 이 기준이 매일 바뀌거나 애초에 흐릿하면? 팀원들은 혼란스럽고, 자신도 뭐가 맞는게 모르게 됩니다.
쿠팡은 고객 만족, 물류 효율 등 명확한 방향을 잡고 그것을 증명하는 숫자로 판단합니다. 조직 문화, 일하는 방식에서도 쿠팡 리더십 원칙1이 평가에 크게 반영됩니다. 그게 흔들리지 않으니까 조직이 한 방향으로 쭉 갈 수 있었습니다.
둘째, 솔직함이 필요합니다.
후에 저도 큰 배움을 얻은 경험이 있었는데, 팀원들이 상황을 좋게만 보고해서 제때 필요했던 판단을 못한 적이 있습니다. 김범석 대표님도 비슷한 경험을 하셨는지, “직원들이 자꾸 좋게만 말하려고 한다”며 아쉬워했던 게 기억납니다. 문제가 작을 때 드러내지 않으면 나중에 커져서 더 힘들어진다고요.
팀원들이 상황에 대해 과장하거나 축소하지 않고 “이거 좀 망했어요”라고 숫자와 데이터로 말할 수 있는 분위기, 그리고 그걸 말했을 때 질책하기 보다 해결책을 찾는 시스템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 따라 할 만한 롤모델이 있어야 합니다.
쿠팡이 한창 아마존 따라하기에 열중이던 시절, 김범석 대표님은 아마존이나 구글 같은 곳에서 직접 리더들을 데려왔습니다. 이를 위한 짧은 미국 출장들도 많았고요. 그냥 실력 좋은 사람을 뽑는게 아니라, 직원들이 “저렇게 해야 하는구나” 하고 보고 배울 수 있는 롤모델을 계속 수혈했습니다.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바로 내보내기도 하고요.
이렇게 높은 기준이 제시되지만 의지가 있다면 보고 배울 수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서로의 기대치를 높게 조율하며 성과로 이뤄갈 수 있었던 것이죠. 이런 환경이 아니라면 못한다고 할 때 회사가 불가능한 것을 강요한다며 불만이 생길 수 있습니다.
조직 강화학습 아닐까
요즘 AI 발전을 보면서 이 원칙의 가치를 다시 떠올렸습니다. 예를 들어, 알파고가 바둑에서 이기고 지는 걸 기준으로 배우며 성장한 것, 대형 언어 모델이 “이건 잘했어, 이건 아니야”2라는 피드백으로 성능을 높인 과정이 겹쳐 보였거든요.
조직도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잘한 건 잘했다고 치켜세우고, 못한 건 못했다고 인정하면서 개선하고 고쳐나가는 과정이 반복되면 점점 강해지더라고요. 위 세 가지는 이를 빠르고 부작용 적게 해나가기 위한 장치들인 것이고요.
솔직히 경영이라는 게 거창한 전략이나 화려한 말보다 이런 기본에 충실한 게 더 중요한거 같습니다. 팀을 이끌고 있든 스타트업을 운영하든 한번 돌아보세요.
우리 팀은 뭘 잘하고 있고, 뭘 못하고 있는가.
그걸 판단할 기준이 있는가.
솔직하게 말할 분위기나 시스템이 되어 있는가.
내가, 혹은 누군가가 롤모델이 되어 보여줄 수 있는가.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이 내용에 공감 가는 부분이 있거나, 혹은 다르게 생각하는 게 있으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더 배우고 싶습니다.
쿠팡 리더십 원칙 - https://www.coupang.jobs/kr/coupang-leadership-principles/
RLHF(Reinforcement Learning from Human Feedback, 인간 피드백을 통한 강화 학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