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배우자와 함께 ‘중증외상센터’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유머와 감동이 어우러진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드라마는 중증외상센터의 의료 인력이 부족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극중 의사들은 거의 매일 당직을 서는데도 “사람을 살리고 싶다”는 사명감으로 버텨낸다.
*실제로 2022년 기준 우리나라의 예방 가능한 외상 사망률은 10%에 달한다. 이는 미국과 일본의 약 5%에 비해 높은 수치지만, 지역별 권역외상센터들을 설립하는 등의 노력으로 2010년 35%에서 크게 개선된 결과다.
‘사람을 살리고 싶다’라는 사명감을 갖고 뛰어다니는 극중 의사들의 모습이 숭고하고, 멋지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사명감은 의료현장에서 뿐 아니라, 우리 일상의 다른 영역에서도 큰 힘이 된다. 특히 사명감은 힘든 구간에서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힘을 주는 듯하다. 그래서 나는 사명감으로 버티며 고군분투하는 창업자들을 보면 투자 여부를 떠나 깊은 감동을 받을 때가 있다.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일 또한 기쁘고 뿌듯할때도 많지만, 상처받고 좌절하는 일도 생긴다. 그런 순간에 날 버티게 해주는 요인들은 시기마다 다르지만, 종종 사명감이 버틸 힘을 주기도 한다. 내가 스타트업 투자를 하면서 가질 수 있었던 사명감을 공유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세상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창업자들이 그들의 일을 더 빨리, 더 잘해낼 수 있도록 자본과 경험과 네트워크 등을 적시에 제공 및 연결하여 기여하는 것(그래서 결국 세상을 조금씩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에 기여하는 것)’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기여하는 느낌인데, 조금 더 단계를 쪼개서 위에 언급한 ‘기여감’을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은 아래와 같다.
검증 단계: 문제 해결에 도전하는 창업자에게 시드투자를 통해 가설을 빠르게 검증할 수 있는 자원을 제공하는 것
성장 단계: 더 많은 사람들이 문제해결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창업팀이 다음 단계로 가는 성장 자금을 적시에 제공하거나 연결하는 것
시행착오: 글로벌 진출이나 큰 회사로 성장한 선배 창업가들의 노하우를 VC라는 ‘경험 플랫폼’을 통해 전달하여 시행착오를 줄이는 것
실패 비용: 뛰어난 인재들이 창업이라는 선택을 더 용기 있게 할 수 있도록 실패 비용을 줄여주는 사회적 인프라가 되어주는 것(그래서 더 많은 창업자들이 세상의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기여하는 것)
사명감은 결과보다 과정의 가치를 일깨워 준다. ‘중증외상센터’의 주인공이 이 일을 계속해야할지 고민하는 레지던트에게 ‘너만의 이유를 찾으라’고 했듯, 내가 하는 일에 작더라도 의미부여를 해보면 일도 더 즐거워지고, 어려운 순간들에 버틸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