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 10년 넘게 다니고 있는 카카오벤처스는 초기 단계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탈이다. 우리가 첫 기관투자자인 경우가 많고, 그러다보니 투자하는 단계에서 매출이 없는 것은 당연하고, 뚜렷한 지표나 프로덕트가 없는 경우도 더러 있다.
물론 최근엔 창업자들의 전반적인 역량이 많이 상향평준화되어서 투자를 단 한번도 받지 않았는데도 이미 최소 기능 프로덕트(MVP)내지는 프로덕트를 만들고 최소한의 가설들을 확인하는 정도까지 만들어오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무튼, 서비스나 지표가 있든 없든 우리는 창업팀을 볼 때 사람을 가장 중요하게 본다. 내가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사람의 무엇을 보냐는 것이다. 최근에도 불려간 패널토크에서 같은 질문을 받았다. 그래서 이 기회에 글을 써보면 좋을 것 같아서 키보드를 잡았다.
먼저 테크 산업의 초기기업에 투자하는 카카오벤처스가 사람을 보는 이유는 테크 산업은 소프트웨어가 핵심이고, 소프트웨어는 사람이 점점 더 AI가 쓰고 있지만 쓰기 때문이다. 또 그 사람을 관리하는 것도 사람이다. Sun Microsystems의 co-founder인 Bill Joy가 "The best programmers are more productive than the average programmers not by a factor of 10x or 100x, but by a factor of 1,000x or more in certain tasks"라고 했듯이, 소프트웨어가 핵심인 업에서는 결국 사람이 핵심이 될 수 밖에 없다.
사람을 볼 때 무엇을 보냐라는 질문으로 돌아오면, 나는 요즘 세 가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먼저, 명확한 문제 정의와 문제의 크기이다.
어떤 문제를 풀기 위해 한 회사가 생겨나고, 이 문제를 풀기 위한 가설을 세우고 실험하고, 적합한 솔루션을 찾은 후 규모를 키워내고 정말 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기까지 어쩌면 굉장히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들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좌절과 실패도 있을 것이다. 이런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견뎌야하는 만큼, 창업자가 포기하지 않을 이유, 사명감 같은 것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러려면 문제 정의가 명확해야하고, 힘들어도 꼭 풀고 싶을만큼 적어도 창업자가 느끼기에 문제가 커야한다.
두번째는 얼마나 고객중심적(user-centric)으로 사고하는 팀인가이다.
위에 언급한 문제가 실제로 고객에게서 확인한 문제가 아니라, 창업자의 머리속에서 만들어낸 것이라면 많이 걱정스러울 것 같다. 또, 서비스나 프로덕을 런칭한 이후에도 고객들의 목소리와 행동데이터를 관찰하면서 어떤게 또 불편한지, 어떤 와우포인트가 있는지 등을 찾고 프로덕과 전략에 반영하는 팀들이 결국 고객이 정말 사랑하는 프로덕트을 만들어갈 확률이 높은 것 같다. 그래서 고객의 목소리를 프로덕 개선에 반영하는 프로세스를 갖추고 있는가도 되게 중요하게 본다.
마지막은 최고의 팀을 빌딩하는 것에 대한 의지와 역량이다.
어떤 창업가는 본인이 창업을 생각하며 스타트업에서 경험을 쌓다가, 하나 둘 씩 각 분야의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눈여겨보고, 관계와 신뢰를 쌓다가 창업을 할 때 어떻게든 꼬셔서 데려온다.어떤 창업가는 전직장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서 한분도 데려오지 않고 같이 일해보지 않은 분들로 초기 팀 구성을 채우는 경우도 있다. 전자의 창업가가 최고의 팀 빌딩에 대한 집요함과 역량이 훨씬 크다고 생각하고 이런 분들을 선호한다.
큰 임팩트를 내는 회사를 만들기까지는 너무나 변수가 많고 운도 많이 따라줘야하기에 위 세가지에서 Yes가 나온다고 좋은 결과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확률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믿는다.